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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책 <단 한 번의 삶>(2025, 복복서가) 첫 문장이 이랬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검색창에 '사망'이라 치니, 이탈리아 나폴리 산에서 케이블카가 추락해 4명이 숨졌단 오늘 날짜 뉴스가 나왔다. 삶의 마지막이 거기일 거란 걸 그들은 알았을까.
단 하나이기에 귀중한 거라면 진지하게 베트남채무불이행 물어야 했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챗GPT 창에 그리 적었다. 엔터를 눌렀다.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주 깊은 질문이네요. 많은 철학자, 작가, 예술가들이 평생 붙잡고 고민했던 주제죠. 삶의 의미는 정해진 답이 없어서 어렵고, 또 동시에 더 자유롭기도 해요. 혹시 요즘 어떤 한우리대부 일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셨을까요? 함께 천천히 얘기 나눠봐요."
이들은 알았을까. 삶의 마지막이 오늘이 되리라는 걸. 생사의 경계가 그리 맞닿아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걸 감각하려 가끔 '사망'이란 단어를 검색해본다./사진=네이버 뉴스 화면 캡쳐,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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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심리상담 영역까지 침범하겠네. 그걸 여기다 묻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했다. 필요할 때 이용하다가, 의지하다가, 의존하게 되겠다고.
태어난 지 42년 된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답게 이리 대답했다.
"괜찮아, 내가 생각할 거야."
잠시 인터넷1분대출 뒤 AI에 칭찬받았다.
"그거 정말 멋진 자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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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살다 던진 질문,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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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다. 새벽 6시50분. 어제 맞춘 알람 3개 중 두 번째에서 깼다. 본능적으로 기지개를 켠다. 바로 일어나진 않지만 안 일어나지도 않는다. 지독하게 아픈 정도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양치하고 씻고 머릴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바깥 날씨 잠깐 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가방은 메고 책 한 권은 들고 육중한 현관문을 밀고. 작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피아노 음악을 틀고. 지하철역까지 가는 초록 혹은 파란 버스를 타고 빈자리를 향해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넣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다들 그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고. 덜컹거리며 5호선 광화문역까지 가는 삶.
어찌나 반복했는지 '저절로' 살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퇴근하면 저녁 7시가 넘었다. 그러느라 생각이 끼어들 틈이 줄어들었다. 매일 열심히 달리거나 걸었다. 의식적으로 멈춰야 했다. 질주하는 몸을 정지해놓고 새삼 묻고 싶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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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핸드폰의 '탄생', 깊이와 사색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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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생각하는데 집중력이 그만 흐트러졌다.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좀 길어진 탓이다. 내 손이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쑤셨다. 잡히는 건 핸드폰이었다. 누군가 날 조종하듯 화면을 깨워 인스타그램을 켰다.
무한 릴스(영상)의 세계에 돌입하자 평온해졌다. 랜덤으로 재생되는 짧은 영상들. 엄지손가락을 위로 짧게 올려 넘기고, 또 넘기고, 또 넘겼다. 30분이 훌쩍 흘러 있었고, 생각할 필요도, 그럴 틈도 전혀 없었다.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2023, 어크로스)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가 엄청난 정보에 절여졌다며 문제를 지적하는 거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모든 것을 다 따라잡아야 하고 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깊이를 가질 시간이 없어져요. (중략)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늘 중요한 것보다는 쉬운 것을 제안하는 물건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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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진 시선과 일종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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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건 날 보고 쓴 책인가. 또 다른 책 <생각을 건너는 생각>(2023, 이상북스)에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21세기 현생 인류의 시선은 거의 모든 순간 실시간 디지털평면감옥을 향해 있습니다. 눈꺼풀은 뜨고 있으나 사유는 중단된 이 세계에서는 차라리 '눈을 감고 보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이 더 절실해 보입니다. 생각은 건너가지 못합니다. 일정한 알고리즘 유통 채널을 통해 생각은 쉐이핑되고 주입되고 공유되고 소비됩니다.'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향해 있는 이유는 왜인가. 질문이 꼬릴 물었다.
뜻하지 않게 발견한 이런 해석도 있었다. 철학자 다니가와 요시히로의 책 <연결되었지만 외로운 사람들>(2025, 알에이치코리아)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단편적인 감각과 자극으로 자신을 둘러싼 짤막짤막한 경험에 집중하면서 '쾌락적 나른함'에 젖는 방법이다. 주의를 이곳저곳으로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스마트폰 시대에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다음 문장에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로 출퇴근 시간에 그랬으니까. 이건 나의 위안이었나.
'자연히 감각 또한 여기저기로 흐트러지면서 다소 멍한 느낌이 드는데, 거기서 일종의 위안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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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멈추고 생각…어렵다, 왜 사느냐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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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어렵다. 쓸모와 효율 같은 가치에 어떻게든 맞춰 살다, 갑자기 그런 추상적인 질문이라니. 들이는 시간에 대비해 나오는 결괏값이 보장되지 않는, 잠시도 참기 힘든 걸 보니 살아온 궤적이 TV 화면처럼 보였다.
10대 때였다. 처음 내게 이 질문을 던진 이가 있었다.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었다. 단정한 가르마에 장난기 많은 눈에, 철학자 같은 안경을 썼던 그는 첫 수업 때 대뜸 들어와 우리에게 물었다.
"야, 근데 너네, 왜 사냐?"
갑자기 뭔 소리야. 뜬금없는 말에 교실 전체가 웃음으로 물들었다. 왜 사냐니, 사니까 사는 거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물음. 응당 해야만 하는 것들에 쫓기고 파묻혀, 다음 목표인 '대학 잘 가기'를 향해 내달리던 이들에게 왜 사냐니.
그런데 그게,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수업이었다. 왜였을까.
마흔이 넘어서야 이에 답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나는 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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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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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태어났으니까 사는가. 문득 인지하고 보니 숨 쉬고 있는데, 그걸 멈출 자신이 없어서 사는가.
그렇진 않다. 외려 잠들 때마다 하루에 한 번은 죽는다고 생각하고, 눈 뜨면 운 좋게 생이 이어졌다고 여긴다. 지나간 밤에도 무수히 많은 이들이 숨졌다.
그럼 행복하기 위해 사는가. 행복하고 싶은 건 맞다.살면서 힘들기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이젠 잘 안다, 행복과 힘듦이 교차하며 이어지는 게 삶이란 것 정도는. 행복은 필요하다.
내게 행복은 무엇인가. 돈을 많이 버는 건가. 아니다. 돈은 하루를 살기에 허덕이는 정도로 없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잖나. 돈 없는 상태가 되는 게 두려워, 막연히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긴 하다. 또 돈은 시간의 자유를 담보해주기도 하니까.
돈을 버는 게 가장 큰 행복이면, 인생에서 돈을 벌었을 때가 가장 기억나고 좋았어야 할 텐데. 또 그렇진 않다. 월급날에 월급을 안 본 지도 꽤 됐다(갑자기 적어졌을 때만 명세서를 본다). 월급이 들어왔어, 너무 행복해, 라고 생각해 본 적도 거의 없다. 얼마 모았어, 너무 좋아,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식구들에 대한 책임감이 큰 편인데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안정감 정도, 그 정도 역할.
기억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좋아하지만 1만5000원이라 비싼 아이스크림을, 자주는 못 사 먹어도 가끔은 사 먹을 수 있는. 돈은 그 정도로만 벌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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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행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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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릴런드의 책 <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2024, 북모먼트)을 읽다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내 목표는 행복하게 살고 떠들고 인생을 즐기는 거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지. 가끔 사람들과 어울려서 저녁도 먹으러 가고. 그러면 하루하루가 훌쩍 지나가.'
그런 하루가 모인 게 삶이지. 공감이 갔다. 그렇다면 틈틈이 자주 챙기고팠던, 작지만 실은 전부인 나의 행복은 뭔가. 언제 행복했는가.
눈을 떴을 때, 요즘 들어 자주 깨는 아내가 아주 곤히 자는 걸 보았을 때. 가능한 그걸 깨우지 않으려 뒤척이지 않고 고요히 이불을 덮을 때. 잠잘 시간이 아직 남은 걸 봤을 때.
그리 깨어 아가랑 같이 거울을 보았는데, 눈이 마주치자 까르륵, 까륵 웃었을 때. 엄마, 아빠 해보라고 또박또박 입 모양을 보여주는데, 못 따라 하지만 또 까륵, 하고 웃을 때.
여유 있게 집을 나선 날, 천천히 걷다가 하늘을 봤는데, 파란 배경에 초록빛 무성한 이파리가 가득한 나무를 봤을 때. 동네서 산책하던 강아지가 난데없이 날 보며 꼬릴 흔들고 반길 때.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을 봤을 때.
만원 지하철에서 운 좋게 자리가 나서 앉을 때. 이리저리 치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여유를 찾을 때, 바라보고 사색할 수 있을 때. 이 자리가 필요한 누군가 앞에 선 걸 보고 내어주고, 아직 그럴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챘을 때.
봄에 핀 꽃을, 여름의 녹음과 바람을, 가을의 눈이 이상할 정도로 시퍼런 하늘을, 그 아래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겨울에 카메라 초점이 안 잡힐 만큼 새하얀 설경을, 그걸 보며 대체 이런 걸 공짜로 누려도 되는 건가, 느리게 감각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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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의 행복이라면, 그걸 위해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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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자주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소한 건가. 그게 네 행복이라면,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면서, 그런 일상을 깊이 만끽하기 위해 사는가.
그 정도만 삶을 잘 유지하다 가기 위해 사는가. 그러기 위해 산다고 정리하면 되나. 그렇게 말하니 그것만은 또 아닌 것 같다. 그럼,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다는 건가. 그런 것 같다.
또 뭘 위해서인가. 뭔가 더 낫게 만들고 싶다. 대체 무엇을?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거기서 숨 쉬는 존재들을. 왜 그런 것 같나. 자꾸 눈에 밟혀서 그런 것 같다. 그냥 못 지나치겠다. 힘겨워하는 걸 보는 게 싫다. 뭐라도 바꾸고 싶다.
그렇게 바꾸면 행복한가?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하다. 평생 번식하고 미용만 당하며 살던 '홍시'란 강아지가 있었다. 취재하며 알았다. 글을 다 쓰면 내 역할은 실은 거기까진데, 유선종양에 아픈 걸 보고 치료해주고 싶었다. 맘 좋은 수의사님께 부탁드렸다. 치료해주었다. 그게 인연이 돼 입양까지 갔다. 거기서 잘 지낸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홍시가 웃고 있었다. 이 기분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가, 깊은 행복이다.
그게 행복하면, 그대로 하며 살면 되지 않은가. 너는 그러기 위해 사는 게 아닌가. 왜 사는지 고민한 건 왜인가. 그런 좋은 일만 있진 않아서다. 그게 무슨 말인가. 바뀌지 않는 현실이 배 이상으로 더 많다. 그걸 보는 건 괴롭다. 그럼 도망치고 싶은가.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외면해버리면 되잖나. 그건 또 어렵다.
아주 가끔 뭔가 나아지는 걸 보고 행복한 것과, 자주 바뀌지 않는 현실을 보며 괴로운 것 중에서, 뭐가 더 큰지 따져보면 되지 않나. 그 질문은 어렵다. 다만 할 수 있는 걸 하자며 하고 있는데, 그 틈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두렵다. 동떨어진 존재들을 잇고 싶은데, 무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 어차피 안 되는 걸 애쓰다, 우울함에 잠식될까 싶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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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묻고 답하다 보니 맘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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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지 않나. 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단 생각은 오만이라는 것도.
그걸 알면서 왜 괴로워하나. 기록해놓고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많은 것들을, 다 챙기지 못해 괴로워 그렇다. 글을 쓴 것 중 해결되지 않은 게 90% 이상인 것 같아서. 그걸 다 쓸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되는가. 아니, 그건 안 된다.
혼자 다 할 수 없는 걸 왜 고민하나. 그런 주제에 외면할 순 없어서 그렇다. 그걸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건가. 함께할 누군가를 더 생각하면 좋겠지. 힘이 훨씬 더 커지므로. 그럼 그렇게 할 방법을 찾으면 좋지 않을까. 맞다. 마음을 함께 써줄 누군가를 더 모아, 같이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왜 지금은 못 하는 건가. 관심을 이끈 뒤, 그다음 어떡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계속하긴 힘들고, 그만둘 수는 없는, 그런 상태로 살아갈 건가. 계속하긴 힘들지만, 그만둘 생각은 아직 안 하는 상태로 살겠지. 그렇게 좀 더 버티면 되는 건가. 버틴다는 표현은 그렇지만 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글의 힘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단 얘긴가. 그렇게 느낀다. 그럼, 쉬이 바뀌진 않지만 바꿀 수 있는 걸 바라보면 좋지 않을까. 바꾸지 못하는 걸 외면하진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긍정하고 좀 내려놓으면 좋지 않을까. 함께할 누군가를 더 연결하고, 집약된 힘으로 좀 더 많이 바꾸자고 떠들면 어떤가.
그리 정리된 결론이 맞다. 그런 삶을 위해 사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이리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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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만들어 내는, '비슷한 사고'에 대한 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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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관념적인 글이 되었으나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멈추고 생각하는 건 귀찮고 불편하고 도망치고픈 기분이 자꾸만 들게 했으니.
시간이 모처럼 느리게 흐르는 기분도 들었다. 뭉쳐진 감정 같은 것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예컨대 거울을 보며 생각하고 물었다. 지금의 무표정은 짜증인가, 불안인가, 지루함인가, 부러움인가, 불편인가.
앞 문단에서 글을 끝내려다, 마뜩잖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의 실체는 왜인가 생각했다. 이틀을 생각한 뒤에야 알게 됐다.
단지 '내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자고 쓴 글이 아녔다는걸.
책 <생각을 건너는 생각>에서, 내가 바라던 글의 방향을 찾았다.
'지금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방식은 어떤 사람이나 취향의 공동체를 동질적 메커니즘으로 묶어서 동질화 사고를 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클릭 수가 있는 것,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 이런 것들을 계속 떠오르게 만들고, 그런 데이터 속에서 우리가 인생의 시간을 쏟아버리게 만드는 시간점유율을 통해 시장을 확보합니다.'
그러지 말자고, 그러기 위해 함께 생각하자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에필로그(epilogue).
생각을 앗아가는 고도화된 기술이랄까. 생각하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랄까.
지하철에서 릴스나 쇼츠에 빠져, 생각을 멈춘 나를 바라보며 우려하던 게 그런 거였다.
더 질문해야 할 게 생겼다. 그게 문제인 이유는 또 뭔가.
그로 인해 잃는 것들. 마땅히 매 순간 생각해야 할, 깊고 오래 사유해도 답을 참 얻기가 힘든, 예컨대 이런 질문들.
'4월인데 우박이 왜 쏟아졌는가, 그러다 며칠 뒤엔 왜 초여름이 됐는가,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이유는 뭔가, 이리 심각한데 왜 아무도 그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자고 하지 않는가,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뭔가.'
생각만 해도 압도되어 또 자동 추천 영상들을 향해 도피하고만 싶다.
그래도 생각해본다. '함께' 맞서본다면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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